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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게임 질병화 반대”…“더 많은 논의 필요해” 한목소리
임영택 기자 | 승인2018.03.09 18:31

“DSM(미국 정신의학회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편람)에서도 인터넷게임장애는 정식 질환에 오르지 못했어요. 진행된 연구들의 단점들이 많고 우을증이나 ADHD 등 공존질환과 너무 많이 관련됐기 때문입니다. 이번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가 등재되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아요.”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질병화 시도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최근 게임산업계에서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질병화 시도로 혼란에 빠졌다. WHO가 오는 5월 예정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에 ‘게임장애’ 등재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WHO의 게임 질병화 시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현장에서는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등록되는 것에 대한 정신의학 전문가와 미디어 전문가, 심리학 전문가의 반론이 제기됐다.

 

◆ 게임장애 진단기준 비체계적 “병리 진단에 적합하지 않아”

이날 행사에 나선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DSM에서 인터넷게임장애가 정식 질환으로 등록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며 이번 ICD 개정판에 게임장애가 등재되는 것에 대해 반론이 있다고 강조했다. 의학적 관점에서 병리를 진단하기 위한 기준이 비체계적이고 일정하지 못하다는 의견이다.

한 교수는 “(인터넷게임장애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정한 진단기준이 없었고 내성이나 금단 증상에 대한 정의가 불가능해 정식 질환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라며 “이번 ICD의 경우 내성과 금단 기준을 빼고 해당 기준으로 등재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냈다”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질환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해당 진단기준에 너무 많은 이들이 적용되면 안 된다. 가령 100명 중 33명이 진단기준상 질환이라면 이는 병이 아닌 트렌드라는 것이다.

보통 질환은 기준상 5%에서 10% 정도가 발생해야 병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고 이를 따지는 것이 진단역치다.

그러나 인터넷게임에 대한 몰두나 금단증상, 내성 등의 기준은 병으로 역치할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 구체화가 덜 돼 있기 때문이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장애가 질병이 되기에는 연구도 부족하고 진단기준도 체계적이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ICD 11차 개정판 베타 버전의 경우 ‘▲게임사용시 통제력이 약화된 게임 행동 패턴으로 ▲일상생활보다 게이밍이 우선되고 ▲부정적인 결과에도 지속 혹은 증가된 게이밍이 이뤄지고 ▲행동 패턴이 개인, 가족, 사회 등 중요영역에서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고 적어도 12개월 동안 분명해야 한다’고 정의됐다.

한 교수는 “게임과몰입 센터를 운영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심하다는 기준을 시간으로 하기도 어렵고 나쁜 게임이어서 더 심하고 좋은 게임에서 덜 심하고 식으로 볼 수도 없다는 것”이라며 “이런 부분 때문에 역치를 정의하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게임장애는 다른 질환과 너무 많이 관련돼 독립적으로 살펴보기 어렵다. 게임장애의 75%는 우울증, 57%는 불안장애, 60%는 강박증이었다. 특히 ADHD 질환은 100%였다.

한 교수는 “공존 질환과 너무 많이 관련돼 (게임장애의) 순수한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라며 “다른 질환과 연관이 강하다”라고 덧붙였다.

 

◆ “게임 질병화는 뉴미디어 포비아의 연장…향후에는 유튜브가 타깃될 것”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게임 질병화를 뉴미디어 포비아(공포)의 전형으로 분석했다. 1800년대 초 유럽에서 대중소설이 인기를 끌자 엘리트 신문이 이를 비판하고 1970년대 텔레비전이 등장하자 부정적인 시선으로 봤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2000년대 초에는 신문과 텔레비전이 힘을 합쳐 인터넷의 부작용을 비판했다”며 “앞으로는 게임보다 유튜브가 더 비판을 받고 이에 대한 토론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게임과 관련해 지난 20여년간 공포감을 조성하고 그 결과물이자 해결책으로 강제적 셧다운제가 시행됐지만 또 다른 공포인 게임의 질병화가 시도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극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 교수는 “한국에서 게임은 정상성과의 대립, 교육과의 대립, 건강과의 대립, 현실적 유용성과의 대립을 통해 비정상적이고 비교육적이고 건강에 나쁘고 하등 쓸모없는 것으로 공포가 조성돼 왔다”며 “공포를 조장하는 연구가 대중매체를 통해 전파되고 정치적 개입이 이뤄지고 재보도돼 다시 연구가 이뤄지는 순환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게임장애가 질병이 될 경우 많은 부정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게임장애’라는 이름이 그 자체로 ‘게임장애’라는 질병을 가진 환자를 양성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게임을 오래 즐기는 것에 ‘게임장애’라는 이름이 부여되는 순간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름을 짓는 것은 바위나 폭포 같은 속성이 변하지 않는 자연류가 있는 반면 소셜네트워크에서 화제가 된 ‘폭탄주 이모’ 같은 이름이 부여되면서 속성이 변하는 인간류가 있다”며 “게임장애는 인간류 이름짓기로 실행성을 지닌 정치적 용어”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될 경우 ▲부정적인 믿음 때문에 실제로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현상인 노시보효과 ▲게임장애가 병이 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병적이득 현상 ▲게임을 오래 즐기는 이들의 출구 부재 등의 현상이 우려된다.

노시보현상은 진짜 효과 있는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거나 멀쩡한 우유를 먹어도 상했다는 소리에 반응이 오는 것으로 ‘게임장애’라고 이름이 지어지면 환자들이 엄청나게 생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 병을 얻으면 양심의 가책과 사회적 책임, 처벌, 의무 등에 대한 면제 혹은 경감이 생기는 현상을 지적하며 게임장애를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들이 새로운 병역면탈 방식으로 이용하거나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소명하는 용도로 게임 탓을 할 수도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게임장애’로 인해 게임을 오래 즐기거나 과도하게 빠져 있는 이들이 평생 정신질환자로 낙인 찍힐 수 있는 것을 우려했다. 이 소장은 “게임중독이나 과몰입은 대부분 30대 이전에 사라지지만 게임장애가 되면 이들은 계속 장애를 안고 있는 상황이 된다. 정신장애는 완치 개념이 없기 때문”이라며 “탈출구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에 이 소장은 게임의 질병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뛰어남이 중요한데 (게임장애 등재는) 모두 다 평범하게 만든다”라며 “사회문화적 파급효과와 경제성,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한 정책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경란 동의대 디지털콘텐츠공학과 교수, 김봉석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교수, 유원준 앨리스온 디렉터 등이 참여해 종합 토론도 진행됐다. 좌장은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이 맡았다.

[임영택기자 ytlim@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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